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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은 찬바람이 일면서 쫄깃거리는 제맛이 나기 때문에 천상 뻘일은 겨울이 제철이었다. 꼬막은 뻘밭이 깊을수록 알이 굵었다. 뻘밭이 깊으면 발이 그만큼 깊이 빠지는 걸 알면서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용기가 아니었고 무모함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생계였다. 꼬막을 잡아야만 하루 목숨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인네들은 살을 찢는 겨울 바닷바람에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려 맨살을 드러낸 채 뻘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태백산맥 4권 제2부 민중의 불꽃 3.평행선 중에서
염상진 부대가 율어면을 장악한 후 오판돌 소대와 합류하여 주월산에 이르러 보성만을 바라보며 저 바다가 어족만이라도 풍부했더라면 많은 농민들이 빈궁을 면할 수 있었을텐데 하며 생각하는 장면


꼬막은 다른 조개들과는 달리 다루기가 꽤는 어려웠다. 모래밭에 사는 조개들과는 달리 뻘밭을 집으로 삼고 사는 꼬막은 온몸에 거무스름한 갯뻘을 맥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씻는 것부터가 다른 조개에 비해 힘과 정성이 몇 곱으로 들었다. 힘과 정성이 몇 곱으로 드는 것은 갯뻘이 묻어서만이 아니었다. 그 껍질의 생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조개는 그 껍질이 매끈거리게 마련인데 꼬막의 껍질은 수없이 많은 골이 패어 있었다. 기와 지붕과 똑같은 골이 쥘부채의 살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 골마다 갯뻘이 끼어 있으니 씻는 것만도 보통일은 아니었다. 그 다음이 삶는 일이었다. 솜씨는 이때부터 필요한 것이었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듯 해버리면 꼬막은 무치나 마나가 된다.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 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 그 슬쩍이라는 것이 말 같지 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알맛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었다. 양념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태백산맥 1권 제1부 恨의 모닥불 4.소화, 하얀 꽃이라는 이름의 무당 중에서
소화가 정하섭에게 제대로 된 상을 차려주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자신이 잘 하는 꼬막이라도 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을까 하며 아쉬워하는 장면


부모님이 전라도 분인 덕에 어려서부터 삶은 꼬막을 종종 접해왔던 터라 지금도 가끔 꼬막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늦은 밤 태백산맥을 읽는 중에 꼬막 이야기가 또 나왔다.
좀 전에 배부르리만큼 맥주를 들이키고 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꼬막 이야기에 또 다시 배가 고프니 이를 어쩌냐... 더구나 삶은 꼬막은 쉽게 해 먹을 수 없는 음식인데...

사실, 이리 아픈 이야기를 읽으며 먹을 탐을 내는 내 자신이 참 우습기도 하다만, 삶이란게 아픈 중에도 작은 기쁨이 있고, 그래서 또 살아가는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태백산맥.. 아직 반을 넘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아픈 이야기다. 오가며 버스 안에서 차마 가볍게 집어 들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그 아픈 이야기들 속에 짠하지만 너무나 정겨운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있고, 그래서 더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조만간 꼬막을 먹어야겠다. 지금까지 먹었던 꼬막과는 조금은 다른 맛이 느껴질 것 같다.



덧붙임.
9월까지 태백산맥을 종주하려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되었고, 10월까지 한 달 늘여 천천히 종주하려고 한다. 뭐 내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지는 않으려 한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으니...
Posted by 브렛